I'll be there
w. F
warning 마약, 성매매
1.
스티브 로저스는 길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급히 숨을 들이켰다.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 될 존재. 남자의 밝은 녹색 눈동자는 혼탁하기 그지없었다. 뱀이 낮게 쉿쉿 소리 내듯 바닥에 누워 있던 이가 중얼거렸다. 오랜만이군, 스티븐 로저스. 전 세계의 영웅, 구원자.
남자는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확대된 동공과 불분명한 발음이 혼란스러운 그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티브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남자가 힘겹게 들어 올린 손을 붙잡았다. 날카로운 검은색 손톱이 스티브의 손을 영영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그의 손등에다 깊은 붉은색 자국을 냈다. 스티브는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로키. 당신이 대체 왜 여기에.
남자가 기다란 검지로 쉿, 스티브의 뒷말을 끊었다. 피골이 상접해 비쩍 마른 로키의 얼굴과 뼈가 드러난 팔과 손가락은 동정심이 일었으면 일었지, 뉴욕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스티브는 붙잡은 로키의 손을 위로 들어 올렸고 그 때문에 헐거운 소맷자락이 아래로 내려갔다. 선명한 바늘 자국이 드문드문 나 있는 마른 팔을, 스티브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몇 번 얼핏 본 적이 있었다.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공익 광고들, 다큐멘터리와 신문 기사, 잡지에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한 마약 중독 환자들의 팔 위로 로키의 앙상한 팔이 겹쳐졌다.
무시하고 지나가, 스티브. 로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스티브의 눈에 확실히 로키 오딘슨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씨 착한 영웅은 그를 길바닥에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2.
끔찍하리만치 텅 빈 녹안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쫓았다. 스티브는 담배를 꼭 쥔 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또한 로키는 스티브에게 담배 이상의 기호식품을 요구하지 않았다.
스티브는 저 눈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소년은 증오와 장난에 불타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얘기했었다. 나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정말로? 스티브는 지금 제 앞에 있는 흐리멍텅한 녹색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몇 년 전에 보았던 악당 로키 오딘슨을 떠올리며, 그 초록색 눈 안에 분노든 뭐든 들어있길 바랐다. 그러나 로키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나를 쉴드(S.H.I.E.L.D)에 넘길 셈이야?”
로키의 메마른 목소리를 들은 스티브는, 그에게 따뜻한 코코아가 든 잔을 내밀었다. 탁자 위 두 개의 머그잔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쉴드는 궤멸했어. 지금은 어벤져스가 그 일을 대체하고 있지.”
그러자 로키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다 죽어가는 겨울나무처럼 앙상한 손가락이 가볍게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스티브는 뼈마디가 불거진 로키의 손을 말없이 응시했다. 안쓰러워서 잡고 싶은 손이었으나, 그 이상의 행동은 확실히 무례했다. 스티브는 로키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그거 잘됐네.”
희뿌연 잿빛 연기가 그나마 살아 있던 로키의 녹안을 완전히 죽여 버렸다. 스티브는 그가 허무하게 아지랑이처럼 사라질 것 같아 내심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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