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열리는
히들온 <GET★HIDDLE>
(a.k.a)톰 히들스턴 필모온리전
에 나올 3번째 스팁로키 게스트북
Paradox
샘플페이지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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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들온 <GET★HID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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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나올 3번째 스팁로키 게스트북
Parado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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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o quia absurdum
w. 레비
Credo quia absurdum,
I believe because it is absurd.
스티브 로저스가 하루를 보내기 위해 들르는 곳은 그의 아파트와 체육관 그리고 체육관 근처에 있는 카페테리아와 인근의 식당이 고작이었다. 정해진 곳에서 훈련을 받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는 군인으로서의 일상이 몸에 배어있던 터라 21세기에 깨어나서도 여전히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체육관으로 향하고, 오전의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 근처의 카페테리아에 들러 점심을 먹고, 다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다가 근처 적당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아파트로 향한다. 평일 뿐 아니라 주말에도 스케줄에 변화가 없었고 심지어 매일매일 이동하는 시간도 거의 일정할 만큼 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지루하리만치 단조로운 일상, 일견으로는 그가 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하루하루를 불만 없이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 같은 자리로 찾아든 스티브를 보고 점원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방에 오더를 넣고 그가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점원이 메뉴판을 스티브의 앞에 내밀었다. 변하는 것 없는데도 스티브는 펼친 메뉴판을 앞장에서부터 꼼꼼히 살핀다. 늘 같은 메뉴를 시키는 걸 아는데 왜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끄느냐는 듯 점원은 제 가져온 볼펜으로 똑딱똑딱 소리를 낸다. 점원의 무례한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메뉴판을 뒷부분까지 꼼꼼하게 읽어보더니 스티브는 늘 먹던 것을 시켰다. 점원은 메뉴판을 집어 든다고 내려놓았던 볼펜을 잊고 돌아갔다. 점심시간이라 스티브 이후로도 여러 손님이 들어와 점원은 제가 볼펜을 놓고 간 줄도 모르고 가게 안을 바삐 돌아다닌다. 스티브는 점원이 놓고 간 볼펜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제 주인에게 잊혔다 싶은 볼펜을 집어 들어 종이 넵킨에 끄적끄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딸랑, 문에 달린 벨 소리와 함께 그가 들어온다. 기다리던 발자국 소리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 스티브가 넵킨 안을 가득 채우던 손놀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가게로 들어선 이는 스티브로부터 따라붙는 시선 따윈 의식하지 않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 역시 거의 늘 같은 자리에 앉는다. 창가 인근 햇빛이 잘 들어오는 자리로. 간혹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자리가 없으면 미간에 잔뜩 인상을 쓰다가 도로 나가버리곤 했다. 스티브는 그의 태도가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다.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찾아온 것일 텐데 예약도 하지 않고 무작정 왔다가 자리가 없다고 인상을 쓰며 가버리다니.
그렇다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 오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스티브와 달리 가게로 오는 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스티브보다 일찍 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보이지 않기도 했으며, 또 나가는 길에 마주쳐 어깨가 부딪히기도 했다. 어깨가 부딪히고서 그는 신경질적으로 보일만큼 날카롭게 스티브를 흘겼다. 어깨가 따갑다 느껴질 정도로. 사소한 부딪힘에도 예민하고,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행동양식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상당히 거만하고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이라 짐작됐다.
다가온 점원에게 주문하고서 그는 시선을 휘 돌려 창가 너머 파란 하늘로 던진다. 가을을 맞아 청명한 뉴욕의 하늘은 완벽하게 푸르렀다. 시야를 가리는 구름 한 점 없이 깊고 푸른 바다처럼 새파랗게 빛난다. 그는 마치 떠나온 고향을 그리는 듯한 얼굴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렇게 그가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야말로 스티브의 시선이 가장 진득하게 붙는 때였다. 밀랍인형처럼 하얀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와 각진 턱 선을 가진 강한 이미지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여린 인상은 묘하게 눈길을 훔쳐간다. 흔하게 보기 힘든 까만 흑발은 선명하게 빛을 내어 그의 안색이 더 파리해보이게 만들며 이질적인 느낌마저 주었고 키는 비죽하니 크고 거의 근육도 없이 바싹 마른 몸매는 남성보다는 여성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하염없이 바라보던 중 하필 고개 돌리던 그와 눈이 맞았다. 그런데 스티브와 시선을 부딪친 그가 예전처럼 미간을 좁히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게 아니라 도리어 입가를 슬쩍 끌어올리는 게 아닌가. 몰래 훔쳐보다가 시선을 들켰다면 제 도둑 시선을 부끄러워하면서 거둬야 하건만, 오늘 스티브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기묘하게도 용기가 솟아올라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동석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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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ange Neighbor
w. 마늘
warning 가스라이팅, 폭력, 동의없는 성행위
추수감사절과 할로윈을 앞둔 어느 가을. 비가 추적이며 내릴 것만 같은 하늘이었지만, 흐린 날씨는 구름과 축축한 공기만 흩뿌려놓기 일쑤였다. 로키는 욕설을 내뱉으며 구겨버린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집어던졌다. 빌어먹을! 나직하게 낮은 목소리는 섹시한 속삭임처럼 울렸지만, 혀끝에서 만들어진 단어는 그리 고상하지 못했다. 히스테릭하게 던진 종이공은 커피 방울을 튀기며 벽에 부딪혔다. 씩씩대는 숨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로키는 노트북을 신경질적으로 닫아버리고 침대에 뛰어들었다. 창밖은 저녁이 된 것처럼 어둑어둑했다. 이런 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짜증이 나기 마련이다. 차라리 폭풍이 왔으면 좋겠어. 의미없이 중얼거린 문장은 쉽게 사라진다. 물론 폭풍이 온다면 그는 침대에서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다. 작가 로키 라우페이슨의 일상은 지독하리만큼 단순했다. 미팅을 하거나 단골 디저트 샵을 가는 일이 아니면 그가 집 밖으로 나오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가 사는 주택가에서 이웃이 누구든 간에 그는 상관하지 않았다. 쓰레기통에서 쓰레기가 넘치지만 않게 해 달라고 빌 뿐. 심지어 왼쪽 이웃은 일주일 전에 이사를 갔고, 오른쪽 이웃은 3일 전부터 여행을 떠난 건지 창문에 불이 켜진 꼴을 보지 못했다. 앞집은 4인 가족이 살고 있지만 그렇게 소란스런 편은 아니었고, 그 가족의 두 아이 역시 얌전하게 지내는 탓에 굳이 불쾌하게 초인종을 누를 필요는 없었다. 로키는 물에 빠진 것처럼 웅웅대는 이명이 들리는 듯 해 귀를 손으로 막았다. 이틀 밤을 꼬박 새었던가. 그는 자신이 언제 눈을 붙였는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차린다. 조명이 없어도 그리 밝지 않은 아침이다. 잠을 자기에는 조금 웃기고 이른 시간이었지만, 먹먹하고 칙칙한 회색 속에서 그에게 필요한 건 잠이었다. 아주 깊고 깊은 잠.
시간이 꽤 흐른 후, 그가 잠에서 깨어난 건 눈을 찌르는 햇빛 때문이었다. 커튼을 치고 잠들지 않았었던 모양이다. 로키는 삐딱하게 잠들었던 뻐근한 몸을 바로 하며 눈을 끔벅였다. 시계는 7시 14분에서 1시 30분으로 옮겨져 있었다. 분명 회색빛이었는데.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게다가 창 밖에서는 요란스런 소리마저 나고 있었다. 자동차의 엔진음이 귀에 거슬렸다. 목을 빼어 바깥을 살핀 그는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이사를 갔던 집에 누군가 들어오려는지, 커다란 이삿짐 트럭이 두세 명의 일꾼과 함께 짐을 내리고 있었다. 로키는 2층 창문에 턱을 괴고 그 행동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깔끔한 가구와 제법 있어 보이는 피아노가 들어온다. 로키는 그가 매일 닦고 손질하는 바이올린을 떠올린다. 음악을 할 줄 아는 사람인가? 그는 약간의 기대감이 생기는 것을 느꼈지만, 금세 고개를 털어 떨쳐내었다. 허세로 가득한 사내일지 모른다. 혹은 여인이거나. 허세를 둘둘 두른 것들은 오히려 그에게 반감을 살 뿐이었다. 로키는 한참동안 옆집 잔디밭에 정리된 채 놓인 색색깔의 화분들을 바라보다가 의문이 들었다. 집주인은 어디 있을까. 깡마르고 깐깐한 원예가일까? 아니면 예술을 하는 사람일까? 그는 속으로 여러 가지 경우를 생각해 보았다. 피아니스트일지도 모른다. 그 피아노는 꽤 있어 보이는 가구 중 하나였으니까. 로키는 그가 음악가였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했다. 베토벤을 잘 치는 이라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그는 흑백의 건반이 얼굴 모를 집주인의 손가락에 의해 눌리는 것을 상상하고 미소지었다. 음악은 그가 편하게 느끼는 몇 안 되는 것들 중 하나였다. 꿈을 꾸게 해 주고, 날카로운 신경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는 수단. 그때, 그는 갈색 이삿짐센터 유니폼 사이에서 푸른색과 하얀색이 섞인 체크무늬 셔츠를 입고 있는 사내를 볼 수 있었다. 깨끗한 금발에, 제법 큰 키와 넓은 어깨를 가진 사내였다. 웃으면서 센터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으로 봐서는 그가 상상했던 것처럼 그렇게 히스테릭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사실 그런 성격은 한 스트리트에 자신 하나만으로 충분하다고 로키는 생각했다.) 로키는 사실, 이웃이 누군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상상속의 집주인의 모습과 현실의 모습을 둘 다 투영했을 때, 그는 꽤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친절한 얼굴의 이웃은 끈질긴 로키의 시선을 느낀 건지 고개를 들었다. 두 시선이 마주쳤다. 로키는 금세 몸을 뒤로 물렸다. 그가 손을 흔들었는지, 혹은 웃어 주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의 친절해 보이는 이웃이 생각보다 더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조만간 초인종이 울리겠군. 로키는 그가 자신을 보지 못했기를 빌어보았지만 그것이 곧 쓸데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기억 속에 연파랑색의 눈동자가 남아 있다는 것을 비추어 보면, 그 눈동자 속에 자신의 모습도 남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여간 운도 없는 날이군. 로키는 한숨을 쉬며 금방 또 지끈거릴 것 같은 머리를 달랬다. 창문을 닫고, 한참동안 관자놀이를 문질러도 조금씩 밀려드는 두통을 막는 것은 무리였다. 스트레스만 받으면 미친 것처럼 구는 이 신경들을 죽기 전에는 고쳐야 할 텐데. 두 번째 한숨을 내쉬며 그는 침대에 걸터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뜨거운 차라도 마시지 않으면 그 거슬림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그는 1층으로 내려가기 시작했지만, 녹색 러그를 깐 검은 계단을 다 내려가기도 전에 초인종이 울렸다.
로키는 웃는 낯으로 문을 열어줄 생각은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않았다. 생각보다 더 빨리 찾아오셨군. 적어도 저녁은 되어야 방문할 줄 알았는데. 문고리를 쥐고, 그는 살짝 숨을 들이켰다. 지끈거리던 두통은 아직 남아 있었지만, 처음 말을 나누는 사람에게 짜증을 낼 정도는 아니었다. 문이 열리고, 햇빛이 가득 들어온다. 빛을 머금은 금발이 제일 먼저 눈에 띄고, 그 뒤로 하늘과 똑같은 색깔의 눈동자가 들어온다. 음. 생각보다 더 예쁜 색이네. 로키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안녕하세요. 옆집에 이사 온 사람입니다.”
“네. 낮부터 고생이 많으시네요.”
로키는 그에게 친히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무언가 들고 있는 손 대신 다른 쪽 손을 뻗어 그의 손을 맞잡는다. 로키의 미적지근한 듯 차가운 체온 대신, 한낮의 열기를 담은 듯 뜨거운 체온이 창백한 하얀 피부 위를 덮어 데웠다.
[스팁로키/sample] Credo quia absurdum w. 레비 (0) | 2018.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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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이야기
w. Alett
warning 동의없는 성행위, 신체훼손
모든 적들을 무찌른 스티브의 기세는 당당하였다. 그러나 천군만마를 얻은 표정치고는 전혀 기쁜듯한 기색이 없었다. 많은 적들의 피를 흠뻑 적시고 오는 기분은 그리 좋지는 못해서 국민들의 환호소리는 머리를 울리는 시끄러운 소음과도 같았다. 그는 피곤했고 얼른 씻고싶고 자신의 폐하, 로키를 만나고 싶었다. 저 높은 자리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있는 고고한 나의 폐하를 보고싶다.
너른 궁전 대리석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 위에 당당한 걸음걸이, 황금과 말라카이트를 깎아 커다란 나무를 조각하여 화려히 꾸며진 알현실의 문 앞에 선다. 문지기가 큰 소리로 승전보를 세운 스티브 장군이 왔다고 폐하께 알린다.
“폐하, 스티브 로저스 대장군께서 납셨습니다!”
“들라 하라.”
“예, 들어가십시오.”
왕의 허락이 떨어지고 문지기가 문을 열었다. 그동안의 전장에서 그리워하던 그를 뵙는 길을 천천히 들어선다. 녹색 휘장이 바람에 산들히 휘날리고 상큼한 포도향이 옅게 흐르는 그리운 이곳을 몇 달이나 기렸던가. 죽음은 두렵지않으나 오로지 폐하를 위해서라면 이 전쟁에서 이겨 돌아가야했었고 필사적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본디 유능한 장수라 걱정은 안되었지만 자신이 패배한다면 나의 왕을 지킬수 없지않은가? 지난 날을 회상하며 한층 한층 계단을 오른다. 왕좌에 앉아있는 검은 곱슬머리, 문에 조각된 말라카이트를 빼닮은 초록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오랜만에 그 눈에 매료되어 저도 모르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꿇는다.
“신! 스티브 로저스. 전쟁의 승리를 등에 이고 고귀한 로키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일어나거라.”
“예, 폐하.”
“너희들은 물러나라.”
꿇었던 무릎을 세워 일어선 스티브는 그의 손짓에 가볍게 목례를 하고 고개를 들어 왕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코앞까지 다가오자 로키는 주위의 신하들을 손짓으로 물러나게 명하였다. 가벼운 발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로키는 농염한 미소를 지으며 스티브에게 팔을 벌린다. 스티브는 그의 어리광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와락 그를 안는다. 진하게 포옹하고 입술로 그의 뺨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스티브 어서와. 보고싶었어.”
“로키. 나도 보고 싶었어요.”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줄은 몰랐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흥, 그렇지만 네가 전장에서 죽었을까봐 걱정되서 잠도 못잤어. 내 얼굴 좀 봐 얼마나 푸석푸석해졌는데.”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우신걸요.”
[스팁로키/sample] Credo quia absurdum w. 레비 (0) | 2018.1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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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팁로키/sample] Falling All In You w. 야옹 (0) | 2018.10.09 |
[스티브로키/sample] I'll be there w. F (0) | 2018.10.09 |
[스팁로키/sample] go with you w. 구름 (0) | 2018.10.09 |
Falling All In You
w. 야옹
사람의 평판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누군가가 말한 것 처럼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7명은 내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나를 싫어하며 1명 정도는 나를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누군가에겐 호감이어도 누군가에겐 비호감이 될 수도 있는게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호감만 받는 사람이 있다면? 비호감만 받는 사람이 있다면? 뭐, 있을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을 대부분 한다. 그렇다면 거기에 더해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는 사람과 누구에게나 비호감을 받는 둘이 연인 사이라면? 이 이야기는 7년간 열애중인 스티브와 로키의 이야기이다.
스티브와 로키는 부모님들이 절친한 친우라 각자 성별이 다른 자식을 낳으면 결혼시키자는 의기투합까지 한 사이였다. 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둘 다 남아가 태어났지만. 여하튼 자연스레 둘은 무엇이든 함께 하며 자랄 수 밖에 없었다. 속된 말로 불알친구. 하지만 7살 때 까지. 왜 7살 때 까지냐, 단정을 짓는 이유는 그 후로는 그들은 인사 한 번 하지 않고 지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스티브와 로키는 어느 순간부터 데면데면 하더니 서로 모른 척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부모님들은 그 둘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 상대에 대해 물으면 선거 기간의 정치인 뺨치게 눈동자 한 번 흔들리지 않은 채 대답을 해 버리니 부모님들은 흐뭇하게 의심 한 번 않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모른척을 하고 산다 하더라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그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 전까지는 그래도 쟤네 둘 친구래, 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건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그 누구도 둘이 친구라는, 그것도 바로 울타리 하나 너머 옆 집에 사는 이웃사촌이라는 사실을 알 지 못했다. 이 맘 때쯤 이면 빌어먹을 사춘기-전적으로 로키의 표현이다-도 끝나 대략적인 성격이 형성 될 시기였다. 둘이 친구라는 사실을-비록 10년 넘게 모른 척 하고 있다 하더라도- 알지 못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에 있었다.
먼저 스티브부터 살펴보자. 스티브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180cm가 넘는 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꿀을 잔뜩 머금은 듯 한 블론드, 떡 벌어진 어깨, 쿼터백을 할 만큼 뛰어난 운동신경,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상냥한 태도 등 이 모든 것이 조합되어 스티브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될 지경으로 만들었다. 모든 운동에서 두각을 보이는데 허세 한 번 부리지 않는 성격과 온 몸에 배인 다정함, 누구에게나 상냥한 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하는 태도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랑에 빠지게 했다. 누구나 스티브에게는 무엇 하나 더 못 주어 안달이었다. 스티브는 그럴 때 마다 곤란하다는 듯 웃었으나 그 모습이 더욱 큰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니, 그건 목 막혀 죽으라는 소리가 아니면 말이 안 된다. 예쁜 자식에게는 떡이 다 무어냐, 십이첩반상을 차려 주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다보니 스티브는 등교길에서부터 피리부는 사나이나 다름이 없었다. 스티브 좋은 아침, 스티브 오늘 뭐 해,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 모두가 그와 가까워지기를 원했고 한 마디라도 더 섞기를 원했다. 그와 가까워지고 그와 말을 섞는 게 마치 누군가에게 수여받는 훈장인 것 마냥. 선생님들 조차도 스티브에게 열심히 한다며-그저 주번 일을 했을 뿐인데도!- 꼭 무엇 하나씩을 챙겨주니 스티브를 향한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호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로키는? 로키는… 그랬다. 로키는 태생적으로 혼자임을 즐겼다. 아니, 여기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다. 로키는 태생적으로 혼자를 즐기지는 않았다. 적당히 남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승부욕도 강했으며 누군가에게 호감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된다면 볼이 붉게 달아 오르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스티브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다들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주지 못 해 안달인 그런 아이. 로키는 자존심이 에베레스트 만큼 드높은 만큼 자존감이 마리아나 해구 뺨치게 낮았다. 스티브는 당연하게 받는 사랑들 하나 하나에 로키는 뺨을 붉히며 행복해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어질수록 로키는 지쳐갔다. 내가 아무리 해도 스티브만큼 사랑해주지는 않는구나. 인생의 깨달음은 6살, 요구르트와 함께 왔다. 스티브가 여러 개를 받았다며 넘긴-수줍게 건넨- 요구르트였다. 로키는 빤히 내밀어진 요구르트를 바라보다 뒤돌아 낮잠을 자는 공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날 낮잠시간, 로키는 통통한 뽀얀 두 볼에 뽑뽑 눈물자욱을 내며 생각했다. 이제 다 필요없어. 그 후 로키는 스티브에게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고 스티브조차 8살이 되던 해 부터는 로키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 후로도 로키는 깐깐하고-섬세하고- 유난스럽고-예민하고- 기분 나쁜 말만 하는-직설적인- 성격을 잔뜩 뽐냈다. 혼돈의 시기인 사춘기를 겪은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의 로키는 게임으로 따지자면 보스몹과 다름이 없었다. 시험기간에 너무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하자고 했다고 욕 먹고, 선생님이 시킨 그대로 지킨다고 욕 먹고, 아파서 체육시간에 벤치에서 쉬었더니 책만 읽는 샌님이라 욕 먹고, 욕만 먹다 보니 로키는 자연스레 입을 더 다물게 되었다. 필요할 때만 한 마디 씩 하는데 그게 참다 참다 뱉은 말이다보니 날카로울 수 밖에 없었고 상대방의 입장에선 틀린 말은 아니니 기분은 나쁜데 할 말은 없어서 인상을 찌푸리며 멀어지려 했다. 거기다 몸을 부대끼며-땀을 흘려대는 건 질색이다- 하는 각종 운동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항상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굳이 몸에 배일 매너가 없어 괜한 눈초리를 사기도 했다. 시키는대로는 다 하니 선생님들의 사이에서는 그저 조용한 모범생 정도로 통했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괜히 재수없는 허옇고 비리비리한-스티브도 하얀데!- 샌님으로 통했다. 로키는 그런 말을 들을수록 입을 다물었고 로키에 대한 비호감은 로키가 입을 다물수록 그 크기를 키웠다.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상 둘은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 밖에 없다. 특히 로키 입장에서는 싫어도 계속해서 스티브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 왔다. 오늘 스티브가 어쩌구저쩌구, 로키는 신경질적으로 귀마개를 썼다. 소음이 대충 차단이 되자 그나마 나았다. 그 전 수업 때 나온 과제를 폈다. 어차피 집에 가서 하나 지금 하나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 시간이 빌 때 하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항상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했으니 계획을 실행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마침 다음 수업이 자습을 준 덕분에 시간도 충분했다. 어렵고 재미도 없었지만 로키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로키의 목표는 하나. 졸업하자마자 영국으로 날아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살려는 목표. 영국에는 제 평판에 방해가 되는 스티브도, 그런 스티브에 대해 항상 묻고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새로운 출발선. 그것이 실상은 게으른 로키를 착실한 모범생으로 탈바꿈 시켰다. 남은 기간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저 몇 개월만 더, 조금만 더 고생을 하면 제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남들은 프롬이 다가옴에 따라 점점 더 들떠 갔고 학교도 소란스러워졌지만 로키에겐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에세이를 쓰는 새하얀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는 이 단어 보다는 이 단어가 조금 더 어울릴 것 같고... 하나에 집중하면 주변을 돌아보지를 못 하는 로키라 귀마개를 해야만 겨우 반쯤 차단되었던 소음이 멎은 것을 눈치채지 못 했다. know와 aware of 사이에서 고민하던 로키가 aware of를 선택하였을 때, 새하얀, 하지만 로키와는 다르게 굵고 적당히 굳은살이 박한 손이 툭툭, 로키의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제 영역을 침범한 예의바른 불청객에 로키가 귀마개를 빼며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드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갸우뚱. 제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뇌의 정보처리기능이 오류를 냈다. 스티브 로저스네. 근데 얘 왜 내 앞에 있지? 얘가 내 책상을 두드린건가? 근데 우리 모른 척 하고 지낸 지 10년이 넘지 않았나. 아니, 진짜 스티브 로저스라고? 까지 정보를 처리한 로키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 짧지만 긴 시간 동안 스티브는 햇살 같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입을 연 것은 떫은 감을 먹어도 그것보단 나을 표정의 로키였다.
"왜?"
길게 풀어 쓰자면 어떠한 이유로 십 년 넘게 모른 척 하고 살던 우리가 지금 얼굴을 맞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 좀 해라, 였으나 효율성을 최고로 치는 로키는 거두절미하고 한 단어만 뱉었다. 그것은 역시나 로키의 비호감을 조금 더 적립했다. 비호감이 항공사 마일리지였다면 퍼스트 클래스로 해외를 몇 번이나 돌아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할 만큼 스티브는 너무나도 뜬금없었다. 그래 덕분에 비호감 마일리지를 더 적립 한 마당에 이유나 들어보자. 로키는 펜마저 내려놓았다. 제 에세이의 효율성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know를 쓰는게 나을까? 공부 흐름은 중간에 끊기면 다시 이어지기 힘든데.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스티브의 입을 쭉 잡아 당겨 얼른 말을 하고 꺼져버리라고 소리 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멀뚱히 올려다보자 멀뚱히 웃으며-정확히는 눈이 휘어져라 웃고있는- 스티브가 입을 열었다. 스티브가 입을 여는 것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그래! 얼른 말 하고 꺼지라구! aware, know? 이 문맥상으로는 aware of가 더 알맞은 것 같긴 한데, 흠. know도 나쁘지는 않고... 솔직히 문맥상
"나랑 프롬파티에 같이 가줘."
너랑 프롬파티가 말이 안 되진 않,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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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be there
w. F
warning 마약, 성매매
1.
스티브 로저스는 길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급히 숨을 들이켰다.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 될 존재. 남자의 밝은 녹색 눈동자는 혼탁하기 그지없었다. 뱀이 낮게 쉿쉿 소리 내듯 바닥에 누워 있던 이가 중얼거렸다. 오랜만이군, 스티븐 로저스. 전 세계의 영웅, 구원자.
남자는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확대된 동공과 불분명한 발음이 혼란스러운 그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티브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남자가 힘겹게 들어 올린 손을 붙잡았다. 날카로운 검은색 손톱이 스티브의 손을 영영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그의 손등에다 깊은 붉은색 자국을 냈다. 스티브는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로키. 당신이 대체 왜 여기에.
남자가 기다란 검지로 쉿, 스티브의 뒷말을 끊었다. 피골이 상접해 비쩍 마른 로키의 얼굴과 뼈가 드러난 팔과 손가락은 동정심이 일었으면 일었지, 뉴욕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스티브는 붙잡은 로키의 손을 위로 들어 올렸고 그 때문에 헐거운 소맷자락이 아래로 내려갔다. 선명한 바늘 자국이 드문드문 나 있는 마른 팔을, 스티브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몇 번 얼핏 본 적이 있었다.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공익 광고들, 다큐멘터리와 신문 기사, 잡지에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한 마약 중독 환자들의 팔 위로 로키의 앙상한 팔이 겹쳐졌다.
무시하고 지나가, 스티브. 로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스티브의 눈에 확실히 로키 오딘슨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씨 착한 영웅은 그를 길바닥에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2.
끔찍하리만치 텅 빈 녹안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쫓았다. 스티브는 담배를 꼭 쥔 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또한 로키는 스티브에게 담배 이상의 기호식품을 요구하지 않았다.
스티브는 저 눈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소년은 증오와 장난에 불타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얘기했었다. 나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정말로? 스티브는 지금 제 앞에 있는 흐리멍텅한 녹색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몇 년 전에 보았던 악당 로키 오딘슨을 떠올리며, 그 초록색 눈 안에 분노든 뭐든 들어있길 바랐다. 그러나 로키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나를 쉴드(S.H.I.E.L.D)에 넘길 셈이야?”
로키의 메마른 목소리를 들은 스티브는, 그에게 따뜻한 코코아가 든 잔을 내밀었다. 탁자 위 두 개의 머그잔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쉴드는 궤멸했어. 지금은 어벤져스가 그 일을 대체하고 있지.”
그러자 로키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다 죽어가는 겨울나무처럼 앙상한 손가락이 가볍게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스티브는 뼈마디가 불거진 로키의 손을 말없이 응시했다. 안쓰러워서 잡고 싶은 손이었으나, 그 이상의 행동은 확실히 무례했다. 스티브는 로키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그거 잘됐네.”
희뿌연 잿빛 연기가 그나마 살아 있던 로키의 녹안을 완전히 죽여 버렸다. 스티브는 그가 허무하게 아지랑이처럼 사라질 것 같아 내심 불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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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with you
w. 구름
도시를 무겁게 감싸 안고 있던 공기가 사라졌다. 시민들의 공포심을 유발하는 원인이 사라지자 둔탁한 소음이 난무하던 공간이 진정되었다. 사태가 진정되어 가자 토니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의 경계심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그들과 달리 스티브는 긴장감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의 신경은 적이 날뛰던 방금 전보다 더 날카롭게 반응하고 있었다. 분명 눈으로 보이는 장면은 끝을 알리고 있는데 스티브의 감각은 그렇지 않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스티브는 방패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줬다.
“로키!”
거센 돌풍이 일었다. 잔잔하다 못해 고요했던 공기의 흐름이 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스티브의 예감이 맞았다. 엄청난 힘이 로키를 감싸 안고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얼음과 눈보라가 로키를 감췄다. 급변한 상황에 사람들의 얼굴이 굳었다. 토르가 로키와 함께 나타났을 때, 아니 그들과 함께 지구를 침범한 적에게 맞서겠다고 했을 때 거절했어야 했다. 뉴욕사태의 주범인 로키가 쉽게 자신들을 도와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토르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힘겨운 싸움을 앞두고 있었더라도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뭐야, 아직도 지구를 침략하겠다는 야심을 못 버렸어?”
빈정거리며 로키를 막기 위해 상황을 정비하는 토니와는 달리 하얗게 질린 얼굴의 토르는 별다른 대응을 준비하지 못했다. 지구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생김새를 하고 지구의 것이 아닌 게 분명한 힘을 구사하는 적을 맞설 때만해도 로키는 의사를 가지고 자신의 힘을 제대로 제어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로키는 제 힘을 자신의 뜻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로키의 마력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있는 형국이었다. 갑자기 폭주해버린 로키를 보고는 토르는 묠니르를 휘두르며 장벽을 뚫고 로키에게 가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토르는 그의 목적에 도달하지 못했다.
“괜찮아?”
스티브가 장벽에 막혀 튕겨져 나온 토르의 앞을 막아섰다. 토르를 향해 쏟아지는 냉기를 막으며 스티브는 뒤를 돌아봤다. 토르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로키가 위험해.”
토르의 말에 스티브의 얼굴이 구겨졌다. 지금 이 상태라면 로키의 안위보다 자신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해야 할 판이었다.
“토르! 막을 방법 없어?”
어떤 시도에도 쉽게 뚫리지 않는 힘의 장벽에 멤버들의 표정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힘의 원천인 로키를 제지해야 주변으로 퍼져 나가는 한기를 막을 수 있을 거였다. 로키에게 닿을 방법을 찾지 못한 멤버들이 토르를 찾았지만 토르는 생각에 잠겨 멤버들의 부름을 듣지 못했다. 그런 토르를 본 스티브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단단히 각오를 하고 가로막고 있는 힘에 몸을 부딪쳤는데 생각보다 쉽게 장벽이 갈라졌다. 다른 사람들이 고전한 것이 연기였던 것처럼 스티브는 큰 어려움 없이 얼음조각이 날아다니는 눈보라를 뚫고 로키가 있는 중심부로 향했다.
“로키!”
스티브의 고함소리에 로키가 스티브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스티브는 로키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스티브는 로키를 향해 그만두라고 소리치며 그에게 다가갔다. 로키의 힘은 스티브에게 큰 타격을 주지 않았다. 스티브가 로키에게 가까이 갔을 때 스티브는 로키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초점 없는 흐린 눈동자가 스티브를 향해 있었다. 스티브는 로키를 설득하려는 생각을 지웠다. 어떤 말을 하던 로키는 알아듣지 못할 것이었다. 스티브는 로키를 결박하기 위해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스티브의 손이 로키에게 닿았을 때 로키의 몸이 힘을 잃고 쓰러지려 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스티브는 반사적으로 로키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로키?”
눈보라 속으로 스티브가 사라진지 얼마 되지 않아 난리를 피우던 로키의 힘이 서서히 약해지기 시작했다. 세차게 불던 바람이 멈추고 끝도 없이 떨어지던 기온이 정상을 향해 움직였다.
로키를 감싸고 있던 눈보라의 장벽이 사라지자 그 안엔 얼빠진 얼굴로 로키를 끌어안고 있는 스티브가 서 있었다. 잔잔해진 힘의 파동 속에 서 있던 스티브는 멤버들이 다가오자 정신을 차렸다. 의식이 없는 로키를 고쳐 안으며 스티브는 토르를 쳐다봤다. 토르의 시선은 로키를 향해 있었다. 하지만 토르는 로키를 받아들겠다고 스티브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았다. 스티브도 토르에게 로키를 건넬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캡틴, 지금부터 저희가 맡겠습니다.”
“그러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네.”
스티브의 품에 있는 로키를 인도하기 위해 그에게 요원들이 다가왔다. 하지만 스티브는 요원들의 제안을 거절했다. 토르는 스티브의 행동을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다른 멤버들은 그렇지 않았다. 스티브는 자신을 향한 멤버들의 시선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키를 놓아주면 방금 전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 같아.”
“지금도 캡틴이 딱히 그를 잡고 있는 것은 아니거든.”
단정에 가까운 가정에 토니를 비롯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그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얼굴을 했지만 스티브도 그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줄 순 없었다. 그도 그저 자신이 로키에게서 떨어지면 로키의 힘이 다시 폭발할 거라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을 뿐이었다. 스스로도 명확하게 정의할 수 없는 감각에 스티브는 갑갑한 얼굴로 미소를 띠웠다.
[스팁로키/sample] Falling All In You w. 야옹 (0) | 2018.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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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것
w. 노엘
warning 성매매, 폭력, 컨트보이
그가 로키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몽콕 역에서 막차를 놓쳐 복잡한 홍콩의 골목길에서 길을 잃지 않았더라면, 아니, 로키가 그날따라 번번이 허탕을 치는 일만 없었더라면 스티브 로저스가 그와 만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안녕.”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로키였다. 그 말에, 스티브는 무의식적으로 제 허리춤을 더듬었지만, 이내 제가 총을 반납하고 휴가를 떠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로키의 옷차림을 훑었다. 그 미치광이같은 뿔 투구와 화려한 갑주가 없으니 로키는 이상하리만치 섬약해 보였다. 어쩌면 다 구겨진 얇은 셔츠와, 다 해진 청바지가 그런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스티브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한 번 핥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외계인 군대를 끌고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이 빌어먹을 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한테 용건이 없는 거면 가도 될까?” 로키가 매끄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스티브는 인상을 구겼다.
“여기서 뭘 하는 거죠?” 그가 날선 목소리로 추궁했다. 로키는 그 말에 일순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말끔히 그것을 지워냈다. 스티브는 그 찰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로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천천히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일을 하고 있지.” 그 말에 스티브는 미간을 좁혔다.
“지금은 새벽 한 시가 넘었어요.”
“한창 일할 시간이야.” 로키가 느릿느릿하게 대꾸했다. 일을 하며 귓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저급한 단어를 쓰지 않고 말하는 것은 지독하게 어려웠다. 스티브는 더욱 인상을 구겼다.
“변명을 할 거면 좀 더 그럴듯한 걸 꾸며내는 게 어때요?” 그의 날선 물음에 로키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로키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고, 그 덕에 그의 얼굴은 붉은 가로등 빛에 완전히 삼켜졌다. 불그스레한 빛 아래 서 있는 로키의 모습은 어쩐지 아무렇게나 잘린 채 벽면에 걸린 고깃덩어리 같아 보였다. 그 기묘한 위화감에 스티브는 살짝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로서는 로키가 여기 있는 ‘진짜’ 이유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다시금 강한 어조로 물었다.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말했잖아. 여기서 일을 해.” 로키의 대답에 스티브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나랑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말아요.”
“내가 사실대로 말하면, 경찰에 넘길거야?” 로키가 물었다. 스티브는 로키의 차림새를 슬쩍 훑어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로키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로등의 희미한 빛 때문인지 그 얼굴은 우는 것 같기도, 웃는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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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로키/sample] I'll be there w. F (0) | 2018.10.09 |
[스팁로키/sample] go with you w. 구름 (0) | 2018.10.0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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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팁로키/sample] 침잠(沈潛) w. 써머 (0) | 2018.10.09 |
IL MARE NEL DdIPINTO
w. ጿ ኈ ቼ ዽ
로키는 붓을 들어 물감을 칠하기 시작했다. 초록. 아니, 파랑. 아니, 노랑. 아니, 빨강. 로키는 붓을 내려두고 그림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의 머리카락 색과 같은 검은색만이 작고 네모난 캔버스 위에 남아있었다. 나는 이상하게도 그 검은 캔버스에서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깊은 우울을 느낄 수 있었다. 우울은 날카롭고, 무겁게 나를 관통해왔다. 그리고 점점 차올라 날 질식시켰다. 분명 로키 또한 그렇게 느낄 것이다. 생기 없는 그의 눈은 아무것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천천히 가라앉으며, 혼자서. 혼자서 죽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실체 없는 고통이 늘 그를 따라다니는 듯 했다.
"나는 그림에 재능이 없나 봐. 아무 생각도 안 나."
로키는 검은 그림을 망친 그림이라 말했다.
이곳에 온 지도 벌써 3개월이 지났다.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다니던 마을에서의 첫날이 생각이 났다. 사람이 좋지만, 사람이 싫어 두 번은 못 할 짓이었다. 어릴 적 잠깐 간 바다가 좋아 바다로 왔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대부분의 가난한 집이 그렇듯이 금전 문제로불화가 잦았다. 알코올 중독 아버지는 늘 술에 취해 어머니와 나를 학대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마냥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술에 취하지 않을 땐 한없이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으므로. 술만 아니었더라면. 하지만 아버지는 지속되는 경제 불황 속에서 술을 끊을 수 없었고 학대는 계속 이어졌다. 어느 날은 어머니가 나를 데리고 여행을 갔다. 브루클린의 낡고 작은 아파트에서 벗어나 처음 본 바다는 정말이지, 환상적이었다. 광활한 하늘과 햇빛에 반짝이던 고운 모래, 저녁이면 노을에 붉게 물들었다 어둠으로 모든 걸 삼켜버리는 바다가 좋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와 어머니와의 마지막 추억이다.
잠깐의 행복이 잊히지 않아 얼마 없는 돈을 털어 바닷가의 작은 집을 샀다. 1층은 작업실을 꾸려 화실로 사용하고 2층은 집으로 사용했다. 그렇게 화실에서 몇몇 마을 사람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작업한 그림은 잊을 만하면 팔렸다. 많은 돈은 아니라도 이곳에서 생활하기엔 적지도, 많지도 않은 그저 그런 수입이었다.
그전에는 군인으로 살았다. 총과 연필, 피와 물감, 죽음과 창작.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미대를 졸업하고 방황하다 군에 입대했다. 두 번의 참전을 마지막으로 폭발물의 잔해가 왼손을 꿰뚫었다. 그 덕에 군복을 벗고 의병제대를 하게 되었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아직도 군복을 입고 있었을까? 아니, 사실은 잘 모르겠다. 군인으로서 생활은 잘 맞았으나 그곳에서 내가 늙어가는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다. 덕분엔 적지만 연금도 밀리지 않고 잘 받고 있다. 앞으로 예술로 먹고살 나로선 이것만큼 좋은 이점이 어디 있는가. 폭발물의 큰 파편은 지울 수 없는 흉터와 그날을 잊을 수 없게 손을 심하게 떠는 후유증을 남겼다. 그나마도 왼손인 걸 다행으로 생각했다. 오른손이었으면 그림을 그리지도, 이곳에 올 생각조차도 못했을 거다.
로키는 그림을 배우는 마을 사람 중 한 명이다. 주에 세 번 화실에 들려 그림을 배운다. 그는 특이하게도 바다 사람치고는 검은 옷을 즐겨 입었다. 주변에 널린 게 백사인데 그의 옷에는 모래 한 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의 몸에서, 옷에서 나는 소금기 짙은 은은한 바다 냄새만이 그가 바다에 사는 사람인 걸 알 수 있게 해주었다. 그는 이곳에 오래 산 늙은 어부의 둘째 아들로 사람들 말로는 추운 겨울 바닷가에 버려진 아이를 그 어부가 입양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로키는 바다를 썩 좋아하지 않아 보였다. 본인은 바다를 '싫어하진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로키는 파도 같았다. 늘 불안정하고, 저 먼발치 있다가도 땅에 가까워지면 부서져 사라지는. 나는 가끔 그가 정말로 내 앞에서 부서져 사라질까 봐 겁이 났다.
로키는 그림을 그리다가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연필로, 붓으로 까맣게 덮어버렸다. 처음에는 놀라 몇 번씩 이유를 물어봤지만, 대답은 '마음에 들지 않았어.', '너무 못 그렸어.', '그냥.' 등 비슷한 말만 반복했다. 로키가 그림을 까맣게 덮는 이유는 지금도 알지 못한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더니 로키는 어둡고 무채색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색을 사용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다. 흑색과 백색 이 둘을 제외하곤 다른 색들을 요란스럽게 느껴 했다. 다른 사람에겐 표현의 폭을 넓혀주는 색색의 색들이 로키에겐 오히려 독이 되는 것 같았다. 그를 옥죄여 온다 해야 하나?
로키가 요즘 그리는 그림은 유화를 이용한 두껍고 간결한 터치가 들어간 그림이다. 로키는 그림을 배운지 몇 개월 안 되었지만, 꽤 높은 완성도의 그림을 그렸다. 그 별개로 사람의 눈과 마음을 잡아두는 무언가가 있었다. 힘 있지만 있지만 우아하고, 슬프지만 정적이 있었다. 정작 붓을 든, 그림을 그리는 로키의 눈은 아무 감정도, 생기도 없었다. 의미 없고 무기력한 지친 붓질의 반복이었다. 빛 잃은 녹색 눈은 오히려 모든 걸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로키의 지친 표정 아래 많은 감정, 대부분 괴로움과 슬픔이 느껴졌다. 뭐가 그리도 괴롭고 슬픈 것인지 조금이라도 들어내 내게 말해 준다면 좋을 텐데. 모순적이게도 나는 그의 고통이 좋았다. 내가 그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을 거 같았다. 주제넘은 생각인 건 당연히 알고 있다. 나조차도 완벽하지 않은데, 손병신이 되어 시골에 온 퇴역군인 주제에. 남들이 보기엔 불쌍하고 실패한 인생이. 하지만 사람이란 게 참 영악하고 이기적인 동물이다. 정상 아닌 사람이 정상인 척 불안정한 사람을 곁에 두고 도움과 친절로 위장해 손안에서 이리저리 굴려 먹을 생각이나 하는 날 보면, 역겹다. 내가 생각해도 나 자신이. 하지만 로키는 나를 역겹게 만들어서라도 얻을 그럴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것에 만족했다.
로키에게는 애인이 있다. 로키의 애인은 바다와 마을을 한 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언덕 위 호텔의 소유주라 한다. 이름은 다니엘, 나와 같은 타지인이다. 유부남이다. 불륜관계다. 로키와 다니엘의 사이는 꽤 깊어 보였다. 나는 다니엘을 어쩌다 몇 번 마주친 적이 있다. 한참 집을 보러 다닐 때 그곳에 머물렀으니. 많은 시골이 그러하듯 본토박이와 외지인은 말은 섞어도 섞일 수 없는 그런 게 있다. 그러다 보니 호텔에서 마주친 그와 잠깐 '외지인끼리' 할 수 있는 이런저런 말을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는 물려받은 호텔 사업 때문에 이곳에 장기적으로 머물고 있다고 한다. 훨씬 예전부터 이 마을을 왔다 갔다 하다 눌러살게 되었다고 하는데, 부인은 시골을 싫어해 어쩔 수 없이 주말부부로 지낸다.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남매가 있고, 부인은 지금도 매주 아이들과 함께 다니엘을 보러 온다고 한다. 뒷말만 들으면 매우 단란하고 이상적인 주말부부의 이야기다. 다니엘의 아내는 아직 로키의 존재를 모르나 보다. 그럴 만도 한 게 나도 호텔에서 로키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생각하면 밖에서도 그와 같이 있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둘의 사이를 알게 된 건 내가 직접 본 것도, 로키의 입에서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입에서다.
좁고 작은 마을일수록 눈과 귀, 입이 몰려있다. 마을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많은 말을 해준다. 집안 이야기, 남의 험담, 마을의 역사, 주요 사건, 새로운 가십거리 등등. 마을에서 로키의 평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물론 그 애인도 마찬가지다. 온갖 추측과 소문, 목격, 진실, 나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들을 많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둘이 그런 관계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 말에는 진실도 있겠지만 거짓과 폄하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해 있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앞서 말했듯이 다니엘은 로키의 애인이다. 불륜이다. 애인이란 말답게 둘은 섹스한다. 로키는 애 딸린 유부남과 섹스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로키를 원하고 있다.
나는 갑자기 궁금했다. 로키는 섹스할 때 어떤 표정을 지을까. 그때도 이렇게 빛 잃은 눈일까. 아니면 흥분에 가득 차 눈물을 흘리진 않을까. 좀 더 사랑스러운 표정일까. 너무 오랫동안 그를 보았나 보다. 로키는 무슨 할 말이 있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당황해 무슨 말을 할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렇게 나온 말은 지금 생각하면 벽에 머리를 박고 싶을 정도로 헛소리였다. 로키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알게 된 후 내 사고도 비정상이 되었나? 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가 날 이렇게 만든 것이다.
화실을 닫고, 해가 질 무렵 로키와 근처 바다를 같이 걷기로 했다. 나는 맨발이었고 로키는 검은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어떻게 포슬포슬한 백사장을 구두를 신고 걷지? 바닷사람은 뭔가 다른가 보다. 나였으면 이미 신발에 모래가 가득 차 있을 텐데. 로키는 모래가 들어간 흔적도, 불편한 기색 없이 깔끔했다. 습하고 비릿한 바닷냄새가코끝을 간질였다. 해는 이미 수평선 끝에서 하루의 막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곧 어둠이 몰려오겠지. 이 모든 게 어둠으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돌아와 술을 마셨다. 술집이 아닌 집에서. 작업실에 등불을 두어 개 켜 은은한 달빛과 일렁이는 불빛에 의지해 술을 마셨다. 로키는 술에 취해 다니엘의 이야기를 했다. 어차피 마을 사람에게 들어서 다 알고 있지 않냐며 천연스럽게 말했다. 그를 어떻게 만났는지, 그가 좋아하는 음악은 무엇인지, 못 먹는 음식은 무엇인지, 그가 호텔에서 제일 좋아하는 방 호수가 몇 번인지 등 그에 관한 잡다한 말들을 얇은 입술로 조잘조잘 내뱉었다. 그때의 로키의 눈빛은 생기 없는 눈이 아닌 불꽃에 일렁여 노을이 비치는 바다와 같은 눈 이였다. 아름다웠다. 나는 눈가가 붉게 물든 채 헛손질하는 로키의 손에서 술잔을 빼냈다.
"너무 많이 마셨어요."
"아니야. 더 마실 수 있어."
로키는 손을 뻗어 술잔을 다시 가져오려 했다. 나는 술잔을 로키에게서 멀리, 테이블 바깥쪽으로 슬쩍 밀어놓고 그런 로키의 손을 꼭 맞잡아 테이블 중앙에 올려두었다. 로키는 손을 한 번 나를 한 번씩 보더니 내 눈을 보며 느리게 눈을 깜박였다.
"다니엘 이야기는 많이 들었으니, 로키, 당신의 이야기가 궁금해요. 저는……."
로키는 이를 내보이며 예쁜 웃음을 터트렸다. 그에게선 자주 볼 수 없는 환한 웃음이었다. 그리곤 슬쩍 손을 빼 자신의 얼굴을 감싸 비비고서 주먹을 말아쥐어 눈가를 지그시 눌렀다. 네 말대로 많이 마신 것 같다며, '대부분은 마을 사람들 입에서 들었을 거로 생각했는데……. 나에 대해 무엇이 그렇게 궁금한가요. 대위님?' 하고 비꼬며 말하는 것 보니 생각보다 많이 취한 것 같진 않았나 보다. 로키는 야살스럽게 한 잔만 더 마시게 해주면 다른 사람들에게선 듣지 못했을 이야기를 해주겠다며 말했다. 꽤 달콤한 제안이었다. 한참을 그의 눈을 바라보다 나는 옆으로 뺀 술잔 끝을 잡고 로키 앞으로 밀어주었다. 로키는 만족스러운 듯 술을 입에 대었고, 술을 한 모금 머금어 입안을 헹구듯 마셔 넘겼다. 풀린 눈동자에 노란 불빛과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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