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 열리는

히들온 <GETHIDDLE> 

(a.k.a)톰 히들스턴 필모리전

에 나올 3번째 스팁로키 게스트북 





Paradox






샘플페이지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우훗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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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Unexpected Companion

w. 자네드











Posted by 우훗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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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o quia absurdum

w. 레비











Credo quia absurdum,

I believe because it is absurd.

 



스티브 로저스가 하루를 보내기 위해 들르는 곳은 그의 아파트와 체육관 그리고 체육관 근처에 있는 카페테리아와 인근의 식당이 고작이었다. 정해진 곳에서 훈련을 받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하는 군인으로서의 일상이 몸에 배어있던 터라 21세기에 깨어나서도 여전히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 체육관으로 향하고, 오전의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 근처의 카페테리아에 들러 점심을 먹고, 다시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다가 근처 적당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다시 아파트로 향한다. 평일 뿐 아니라 주말에도 스케줄에 변화가 없었고 심지어 매일매일 이동하는 시간도 거의 일정할 만큼 같은 하루를 반복했다. 지루하리만치 단조로운 일상, 일견으로는 그가 이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하루하루를 불만 없이 이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오늘도 어김없이 같은 시간 같은 자리로 찾아든 스티브를 보고 점원은, 시키지도 않았는데 주방에 오더를 넣고 그가 앉은 자리로 다가왔다. 점원이 메뉴판을 스티브의 앞에 내밀었다. 변하는 것 없는데도 스티브는 펼친 메뉴판을 앞장에서부터 꼼꼼히 살핀다. 늘 같은 메뉴를 시키는 걸 아는데 왜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끄느냐는 듯 점원은 제 가져온 볼펜으로 똑딱똑딱 소리를 낸다. 점원의 무례한 태도에도 아랑곳 않고 메뉴판을 뒷부분까지 꼼꼼하게 읽어보더니 스티브는 늘 먹던 것을 시켰다. 점원은 메뉴판을 집어 든다고 내려놓았던 볼펜을 잊고 돌아갔다. 점심시간이라 스티브 이후로도 여러 손님이 들어와 점원은 제가 볼펜을 놓고 간 줄도 모르고 가게 안을 바삐 돌아다닌다. 스티브는 점원이 놓고 간 볼펜을 지그시 내려다보았다. 제 주인에게 잊혔다 싶은 볼펜을 집어 들어 종이 넵킨에 끄적끄적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딸랑, 문에 달린 벨 소리와 함께 그가 들어온다. 기다리던 발자국 소리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린 스티브가 넵킨 안을 가득 채우던 손놀림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가게로 들어선 이는 스티브로부터 따라붙는 시선 따윈 의식하지 않고 늘 앉던 자리에 앉았다. 그 역시 거의 늘 같은 자리에 앉는다. 창가 인근 햇빛이 잘 들어오는 자리로. 간혹 제가 마음에 들어 하는 자리가 없으면 미간에 잔뜩 인상을 쓰다가 도로 나가버리곤 했다. 스티브는 그의 태도가 선뜻 이해되지는 않았다. 이곳이 마음에 들어서 찾아온 것일 텐데 예약도 하지 않고 무작정 왔다가 자리가 없다고 인상을 쓰며 가버리다니. 

그렇다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 오느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그는 스티브와 달리 가게로 오는 시간이 일정치 않았다. 스티브보다 일찍 오기도 하고 어느 날은 보이지 않기도 했으며, 또 나가는 길에 마주쳐 어깨가 부딪히기도 했다. 어깨가 부딪히고서 그는 신경질적으로 보일만큼 날카롭게 스티브를 흘겼다. 어깨가 따갑다 느껴질 정도로. 사소한 부딪힘에도 예민하고, 타인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행동양식으로 미루어 보아 그는 상당히 거만하고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가 높은 사람이라 짐작됐다.

다가온 점원에게 주문하고서 그는 시선을 휘 돌려 창가 너머 파란 하늘로 던진다. 가을을 맞아 청명한 뉴욕의 하늘은 완벽하게 푸르렀다. 시야를 가리는 구름 한 점 없이 깊고 푸른 바다처럼 새파랗게 빛난다. 그는 마치 떠나온 고향을 그리는 듯한 얼굴을 하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렇게 그가 잠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야말로 스티브의 시선이 가장 진득하게 붙는 때였다. 밀랍인형처럼 하얀 얼굴, 뚜렷한 이목구비와 각진 턱 선을 가진 강한 이미지임에도 어딘지 모르게 풍기는 여린 인상은 묘하게 눈길을 훔쳐간다. 흔하게 보기 힘든 까만 흑발은 선명하게 빛을 내어 그의 안색이 더 파리해보이게 만들며 이질적인 느낌마저 주었고 키는 비죽하니 크고 거의 근육도 없이 바싹 마른 몸매는 남성보다는 여성에 더 가까워 보이기도 했다. 

하염없이 바라보던 중 하필 고개 돌리던 그와 눈이 맞았다. 그런데 스티브와 시선을 부딪친 그가 예전처럼 미간을 좁히거나 얼굴을 찡그리는 게 아니라 도리어 입가를 슬쩍 끌어올리는 게 아닌가. 몰래 훔쳐보다가 시선을 들켰다면 제 도둑 시선을 부끄러워하면서 거둬야 하건만, 오늘 스티브는 그러지 않았다. 그의 미소를 보는 순간 기묘하게도 용기가 솟아올라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동석해도 되겠습니까.”



Posted by 우훗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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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이야기

w. Alett





warning  동의없는 성행위, 신체훼손







모든 적들을 무찌른 스티브의 기세는 당당하였다. 그러나 천군만마를 얻은 표정치고는 전혀 기쁜듯한 기색이 없었다. 많은 적들의 피를 흠뻑 적시고 오는 기분은 그리 좋지는 못해서 국민들의 환호소리는 머리를 울리는 시끄러운 소음과도 같았다. 그는 피곤했고 얼른 씻고싶고 자신의 폐하, 로키를 만나고 싶었다. 저 높은 자리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있는 고고한 나의 폐하를 보고싶다. 


너른 궁전 대리석 바닥에 깔린 붉은 카펫 위에 당당한 걸음걸이, 황금과 말라카이트를 깎아 커다란 나무를 조각하여 화려히 꾸며진 알현실의 문 앞에 선다. 문지기가 큰 소리로 승전보를 세운 스티브 장군이 왔다고 폐하께 알린다. 


“폐하, 스티브 로저스 대장군께서 납셨습니다!” 

“들라 하라.”

“예, 들어가십시오.”


왕의 허락이 떨어지고 문지기가 문을 열었다. 그동안의 전장에서 그리워하던 그를 뵙는 길을 천천히 들어선다. 녹색 휘장이 바람에 산들히 휘날리고 상큼한 포도향이 옅게 흐르는 그리운 이곳을 몇 달이나 기렸던가. 죽음은 두렵지않으나 오로지 폐하를 위해서라면 이 전쟁에서 이겨 돌아가야했었고 필사적으로 승리를 이끌었다. 본디 유능한 장수라 걱정은 안되었지만 자신이 패배한다면 나의 왕을 지킬수 없지않은가? 지난 날을 회상하며 한층 한층 계단을 오른다. 왕좌에 앉아있는 검은 곱슬머리, 문에 조각된 말라카이트를 빼닮은 초록눈이 자신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오랜만에 그 눈에 매료되어 저도 모르게 밝은 미소를 지으며 무릎을 꿇는다.


“신! 스티브 로저스. 전쟁의 승리를 등에 이고 고귀한 로키 폐하를 알현하옵니다!”

“일어나거라.”

“예, 폐하.”

“너희들은 물러나라.”


꿇었던 무릎을 세워 일어선 스티브는 그의 손짓에 가볍게 목례를 하고 고개를 들어 왕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코앞까지 다가오자 로키는 주위의 신하들을 손짓으로 물러나게 명하였다. 가벼운 발소리가 멀어지자마자 로키는 농염한 미소를 지으며 스티브에게 팔을 벌린다. 스티브는 그의 어리광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와락 그를 안는다. 진하게 포옹하고 입술로 그의 뺨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입을 맞추었다. 


“스티브 어서와. 보고싶었어.”

“로키. 나도 보고 싶었어요.”

“전쟁이 이렇게 길어질줄은 몰랐어.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

“그래도 무사히 돌아왔잖아요.”

“흥, 그렇지만 네가 전장에서 죽었을까봐 걱정되서 잠도 못잤어. 내 얼굴 좀 봐 얼마나 푸석푸석해졌는데.”

“그래도 여전히 아름다우신걸요.”


Posted by 우훗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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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ling All In You

w. 야옹










사람의 평판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누군가가 말한 것 처럼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7명은 내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나를 싫어하며 1명 정도는 나를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누군가에겐 호감이어도 누군가에겐 비호감이 될 수도 있는게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호감만 받는 사람이 있다면? 비호감만 받는 사람이 있다면? 뭐, 있을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을 대부분 한다. 그렇다면 거기에 더해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는 사람과 누구에게나 비호감을 받는 둘이 연인 사이라면? 이 이야기는 7년간 열애중인 스티브와 로키의 이야기이다.

스티브와 로키는 부모님들이 절친한 친우라 각자 성별이 다른 자식을 낳으면 결혼시키자는 의기투합까지 한 사이였다. 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둘 다 남아가 태어났지만. 여하튼 자연스레 둘은 무엇이든 함께 하며 자랄 수 밖에 없었다. 속된 말로 불알친구. 하지만 7살 때 까지. 왜 7살 때 까지냐, 단정을 짓는 이유는 그 후로는 그들은 인사 한 번 하지 않고 지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스티브와 로키는 어느 순간부터 데면데면 하더니 서로 모른 척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부모님들은 그 둘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 상대에 대해 물으면 선거 기간의 정치인 뺨치게 눈동자 한 번 흔들리지 않은 채 대답을 해 버리니 부모님들은 흐뭇하게 의심 한 번 않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모른척을 하고 산다 하더라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그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 전까지는 그래도 쟤네 둘 친구래, 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건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그 누구도 둘이 친구라는, 그것도 바로 울타리 하나 너머 옆 집에 사는 이웃사촌이라는 사실을 알 지 못했다. 이 맘 때쯤 이면 빌어먹을 사춘기-전적으로 로키의 표현이다-도 끝나 대략적인 성격이 형성 될 시기였다. 둘이 친구라는 사실을-비록 10년 넘게 모른 척 하고 있다 하더라도- 알지 못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에 있었다.

먼저 스티브부터 살펴보자. 스티브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180cm가 넘는 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꿀을 잔뜩 머금은 듯 한 블론드, 떡 벌어진 어깨, 쿼터백을 할 만큼 뛰어난 운동신경,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상냥한 태도 등 이 모든 것이 조합되어 스티브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될 지경으로 만들었다. 모든 운동에서 두각을 보이는데 허세 한 번 부리지 않는 성격과 온 몸에 배인 다정함, 누구에게나 상냥한 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하는 태도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랑에 빠지게 했다. 누구나 스티브에게는 무엇 하나 더 못 주어 안달이었다. 스티브는 그럴 때 마다 곤란하다는 듯 웃었으나 그 모습이 더욱 큰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니, 그건 목 막혀 죽으라는 소리가 아니면 말이 안 된다. 예쁜 자식에게는 떡이 다 무어냐, 십이첩반상을 차려 주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다보니 스티브는 등교길에서부터 피리부는 사나이나 다름이 없었다. 스티브 좋은 아침, 스티브 오늘 뭐 해,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 모두가 그와 가까워지기를 원했고 한 마디라도 더 섞기를 원했다. 그와 가까워지고 그와 말을 섞는 게 마치 누군가에게 수여받는 훈장인 것 마냥. 선생님들 조차도 스티브에게 열심히 한다며-그저 주번 일을 했을 뿐인데도!- 꼭 무엇 하나씩을 챙겨주니 스티브를 향한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호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로키는? 로키는… 그랬다. 로키는 태생적으로 혼자임을 즐겼다. 아니, 여기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다. 로키는 태생적으로 혼자를 즐기지는 않았다. 적당히 남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승부욕도 강했으며 누군가에게 호감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된다면 볼이 붉게 달아 오르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스티브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다들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주지 못 해 안달인 그런 아이. 로키는 자존심이 에베레스트 만큼 드높은 만큼 자존감이 마리아나 해구 뺨치게 낮았다. 스티브는 당연하게 받는 사랑들 하나 하나에 로키는 뺨을 붉히며 행복해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어질수록 로키는 지쳐갔다. 내가 아무리 해도 스티브만큼 사랑해주지는 않는구나. 인생의 깨달음은 6살, 요구르트와 함께 왔다. 스티브가 여러 개를 받았다며 넘긴-수줍게 건넨- 요구르트였다. 로키는 빤히 내밀어진 요구르트를 바라보다 뒤돌아 낮잠을 자는 공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날 낮잠시간, 로키는 통통한 뽀얀 두 볼에 뽑뽑 눈물자욱을 내며 생각했다. 이제 다 필요없어. 그 후 로키는 스티브에게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고 스티브조차 8살이 되던 해 부터는 로키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 후로도 로키는 깐깐하고-섬세하고- 유난스럽고-예민하고- 기분 나쁜 말만 하는-직설적인- 성격을 잔뜩 뽐냈다. 혼돈의 시기인 사춘기를 겪은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의 로키는 게임으로 따지자면 보스몹과 다름이 없었다. 시험기간에 너무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하자고 했다고 욕 먹고, 선생님이 시킨 그대로 지킨다고 욕 먹고, 아파서 체육시간에 벤치에서 쉬었더니 책만 읽는 샌님이라 욕 먹고, 욕만 먹다 보니 로키는 자연스레 입을 더 다물게 되었다. 필요할 때만 한 마디 씩 하는데 그게 참다 참다 뱉은 말이다보니 날카로울 수 밖에 없었고 상대방의 입장에선 틀린 말은 아니니 기분은 나쁜데 할 말은 없어서 인상을 찌푸리며 멀어지려 했다. 거기다 몸을 부대끼며-땀을 흘려대는 건 질색이다- 하는 각종 운동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항상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굳이 몸에 배일 매너가 없어 괜한 눈초리를 사기도 했다. 시키는대로는 다 하니 선생님들의 사이에서는 그저 조용한 모범생 정도로 통했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괜히 재수없는 허옇고 비리비리한-스티브도 하얀데!- 샌님으로 통했다. 로키는 그런 말을 들을수록 입을 다물었고 로키에 대한 비호감은 로키가 입을 다물수록 그 크기를 키웠다.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상 둘은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 밖에 없다. 특히 로키 입장에서는 싫어도 계속해서 스티브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 왔다. 오늘 스티브가 어쩌구저쩌구, 로키는 신경질적으로 귀마개를 썼다. 소음이 대충 차단이 되자 그나마 나았다. 그 전 수업 때 나온 과제를 폈다. 어차피 집에 가서 하나 지금 하나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 시간이 빌 때 하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항상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했으니 계획을 실행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마침 다음 수업이 자습을 준 덕분에 시간도 충분했다. 어렵고 재미도 없었지만 로키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로키의 목표는 하나. 졸업하자마자 영국으로 날아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살려는 목표. 영국에는 제 평판에 방해가 되는 스티브도, 그런 스티브에 대해 항상 묻고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새로운 출발선. 그것이 실상은 게으른 로키를 착실한 모범생으로 탈바꿈 시켰다. 남은 기간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저 몇 개월만 더, 조금만 더 고생을 하면 제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남들은 프롬이 다가옴에 따라 점점 더 들떠 갔고 학교도 소란스러워졌지만 로키에겐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에세이를 쓰는 새하얀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는 이 단어 보다는 이 단어가 조금 더 어울릴 것 같고... 하나에 집중하면 주변을 돌아보지를 못 하는 로키라 귀마개를 해야만 겨우 반쯤 차단되었던 소음이 멎은 것을 눈치채지 못 했다. know와 aware of 사이에서 고민하던 로키가 aware of를 선택하였을 때, 새하얀, 하지만 로키와는 다르게 굵고 적당히 굳은살이 박한 손이 툭툭, 로키의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제 영역을 침범한 예의바른 불청객에 로키가 귀마개를 빼며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드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갸우뚱. 제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뇌의 정보처리기능이 오류를 냈다. 스티브 로저스네. 근데 얘 왜 내 앞에 있지? 얘가 내 책상을 두드린건가? 근데 우리 모른 척 하고 지낸 지 10년이 넘지 않았나. 아니, 진짜 스티브 로저스라고? 까지 정보를 처리한 로키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 짧지만 긴 시간 동안 스티브는 햇살 같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입을 연 것은 떫은 감을 먹어도 그것보단 나을 표정의 로키였다.

"왜?"

길게 풀어 쓰자면 어떠한 이유로 십 년 넘게 모른 척 하고 살던 우리가 지금 얼굴을 맞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 좀 해라, 였으나 효율성을 최고로 치는 로키는 거두절미하고 한 단어만 뱉었다. 그것은 역시나 로키의 비호감을 조금 더 적립했다. 비호감이 항공사 마일리지였다면 퍼스트 클래스로 해외를 몇 번이나 돌아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할 만큼 스티브는 너무나도 뜬금없었다. 그래 덕분에 비호감 마일리지를 더 적립 한 마당에 이유나 들어보자. 로키는 펜마저 내려놓았다. 제 에세이의 효율성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know를 쓰는게 나을까? 공부 흐름은 중간에 끊기면 다시 이어지기 힘든데.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스티브의 입을 쭉 잡아 당겨 얼른 말을 하고 꺼져버리라고 소리 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멀뚱히 올려다보자 멀뚱히 웃으며-정확히는 눈이 휘어져라 웃고있는- 스티브가 입을 열었다.  스티브가 입을 여는 것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그래! 얼른 말 하고 꺼지라구! aware, know? 이 문맥상으로는 aware of가 더 알맞은 것 같긴 한데, 흠. know도 나쁘지는 않고... 솔직히 문맥상

"나랑 프롬파티에 같이 가줘."

너랑 프롬파티가 말이 안 되진 않,

뭐?


Posted by 우훗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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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ll be there

w. F





warning  마약, 성매매






 1.

 스티브 로저스는 길바닥에 쓰레기처럼 널브러진 사람의 얼굴을 보자마자 급히 숨을 들이켰다.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있어서도 안 될 존재. 남자의 밝은 녹색 눈동자는 혼탁하기 그지없었다. 뱀이 낮게 쉿쉿 소리 내듯 바닥에 누워 있던 이가 중얼거렸다. 오랜만이군, 스티븐 로저스. 전 세계의 영웅, 구원자. 

남자는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확대된 동공과 불분명한 발음이 혼란스러운 그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티브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남자가 힘겹게 들어 올린 손을 붙잡았다. 날카로운 검은색 손톱이 스티브의 손을 영영 놓아주지 않을 것처럼, 그의 손등에다 깊은 붉은색 자국을 냈다. 스티브는 떨리는 목소리로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로키. 당신이 대체 왜 여기에. 

남자가 기다란 검지로 쉿, 스티브의 뒷말을 끊었다. 피골이 상접해 비쩍 마른 로키의 얼굴과 뼈가 드러난 팔과 손가락은 동정심이 일었으면 일었지, 뉴욕을 엉망으로 만든 장본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스티브는 붙잡은 로키의 손을 위로 들어 올렸고 그 때문에 헐거운 소맷자락이 아래로 내려갔다. 선명한 바늘 자국이 드문드문 나 있는 마른 팔을, 스티브는 자주는 아니더라도 몇 번 얼핏 본 적이 있었다. 마약의 위험성을 알리는 공익 광고들, 다큐멘터리와 신문 기사, 잡지에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사용한 마약 중독 환자들의 팔 위로 로키의 앙상한 팔이 겹쳐졌다. 

 무시하고 지나가, 스티브. 로키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지만 스티브의 눈에 확실히 로키 오딘슨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음씨 착한 영웅은 그를 길바닥에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2.

끔찍하리만치 텅 빈 녹안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를 쫓았다. 스티브는 담배를 꼭 쥔 손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구태여 묻지 않았다. 또한 로키는 스티브에게 담배 이상의 기호식품을 요구하지 않았다. 

 스티브는 저 눈을 예전에 본 적이 있었다. 소년은 증오와 장난에 불타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얘기했었다. 나를 막을 수 있으리라 생각해, 정말로? 스티브는 지금 제 앞에 있는 흐리멍텅한 녹색 눈을 바라보았다. 그는 몇 년 전에 보았던 악당 로키 오딘슨을 떠올리며, 그 초록색 눈 안에 분노든 뭐든 들어있길 바랐다. 그러나 로키의 눈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나를 쉴드(S.H.I.E.L.D)에 넘길 셈이야?”

로키의 메마른 목소리를 들은 스티브는, 그에게 따뜻한 코코아가 든 잔을 내밀었다. 탁자 위 두 개의 머그잔에서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쉴드는 궤멸했어. 지금은 어벤져스가 그 일을 대체하고 있지.”

그러자 로키가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다 죽어가는 겨울나무처럼 앙상한 손가락이 가볍게 머그잔을 감싸 쥐었다. 스티브는 뼈마디가 불거진 로키의 손을 말없이 응시했다. 안쓰러워서 잡고 싶은 손이었으나, 그 이상의 행동은 확실히 무례했다. 스티브는 로키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침묵을 지켰다. 

 “그거 잘됐네.”

 희뿌연 잿빛 연기가 그나마 살아 있던 로키의 녹안을 완전히 죽여 버렸다. 스티브는 그가 허무하게 아지랑이처럼 사라질 것 같아 내심 불안했다. 

Posted by 우훗우훗
:


아름다운 것

w. 노엘





warning  성매매, 폭력, 컨트보이





그가 로키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몽콕 역에서 막차를 놓쳐 복잡한 홍콩의 골목길에서 길을 잃지 않았더라면, 아니, 로키가 그날따라 번번이 허탕을 치는 일만 없었더라면 스티브 로저스가 그와 만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안녕.”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로키였다. 그 말에, 스티브는 무의식적으로 제 허리춤을 더듬었지만, 이내 제가 총을 반납하고 휴가를 떠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로키의 옷차림을 훑었다. 그 미치광이같은 뿔 투구와 화려한 갑주가 없으니 로키는 이상하리만치 섬약해 보였다. 어쩌면 다 구겨진 얇은 셔츠와, 다 해진 청바지가 그런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스티브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한 번 핥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외계인 군대를 끌고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이 빌어먹을 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한테 용건이 없는 거면 가도 될까?” 로키가 매끄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스티브는 인상을 구겼다.

“여기서 뭘 하는 거죠?” 그가 날선 목소리로 추궁했다. 로키는 그 말에 일순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말끔히 그것을 지워냈다. 스티브는 그 찰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로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천천히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일을 하고 있지.” 그 말에 스티브는 미간을 좁혔다.

“지금은 새벽 한 시가 넘었어요.”

“한창 일할 시간이야.” 로키가 느릿느릿하게 대꾸했다. 일을 하며 귓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저급한 단어를 쓰지 않고 말하는 것은 지독하게 어려웠다. 스티브는 더욱 인상을 구겼다.

“변명을 할 거면 좀 더 그럴듯한 걸 꾸며내는 게 어때요?” 그의 날선 물음에 로키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로키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고, 그 덕에 그의 얼굴은 붉은 가로등 빛에 완전히 삼켜졌다. 불그스레한 빛 아래 서 있는 로키의 모습은 어쩐지 아무렇게나 잘린 채 벽면에 걸린 고깃덩어리 같아 보였다. 그 기묘한 위화감에 스티브는 살짝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로서는 로키가 여기 있는 ‘진짜’ 이유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다시금 강한 어조로 물었다.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말했잖아. 여기서 일을 해.” 로키의 대답에 스티브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나랑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말아요.”

“내가 사실대로 말하면, 경찰에 넘길거야?” 로키가 물었다. 스티브는 로키의 차림새를 슬쩍 훑어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로키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로등의 희미한 빛 때문인지 그 얼굴은 우는 것 같기도, 웃는 것 같기도 했다.

Posted by 우훗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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