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것

w. 노엘





warning  성매매, 폭력, 컨트보이





그가 로키를 발견한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그 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도리가 없었다. 몽콕 역에서 막차를 놓쳐 복잡한 홍콩의 골목길에서 길을 잃지 않았더라면, 아니, 로키가 그날따라 번번이 허탕을 치는 일만 없었더라면 스티브 로저스가 그와 만나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안녕.” 어색한 침묵을 먼저 깬 것은 로키였다. 그 말에, 스티브는 무의식적으로 제 허리춤을 더듬었지만, 이내 제가 총을 반납하고 휴가를 떠나왔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잔뜩 경계하는 눈초리로 로키의 옷차림을 훑었다. 그 미치광이같은 뿔 투구와 화려한 갑주가 없으니 로키는 이상하리만치 섬약해 보였다. 어쩌면 다 구겨진 얇은 셔츠와, 다 해진 청바지가 그런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스티브는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한 번 핥았다. 대체 무슨 꿍꿍이지? 외계인 군대를 끌고 뉴욕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이 빌어먹을 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속내를 알 수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한테 용건이 없는 거면 가도 될까?” 로키가 매끄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스티브는 인상을 구겼다.

“여기서 뭘 하는 거죠?” 그가 날선 목소리로 추궁했다. 로키는 그 말에 일순간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말끔히 그것을 지워냈다. 스티브는 그 찰나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로키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는 천천히 ‘적절한’ 단어를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일을 하고 있지.” 그 말에 스티브는 미간을 좁혔다.

“지금은 새벽 한 시가 넘었어요.”

“한창 일할 시간이야.” 로키가 느릿느릿하게 대꾸했다. 일을 하며 귓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저급한 단어를 쓰지 않고 말하는 것은 지독하게 어려웠다. 스티브는 더욱 인상을 구겼다.

“변명을 할 거면 좀 더 그럴듯한 걸 꾸며내는 게 어때요?” 그의 날선 물음에 로키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로키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고, 그 덕에 그의 얼굴은 붉은 가로등 빛에 완전히 삼켜졌다. 불그스레한 빛 아래 서 있는 로키의 모습은 어쩐지 아무렇게나 잘린 채 벽면에 걸린 고깃덩어리 같아 보였다. 그 기묘한 위화감에 스티브는 살짝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로서는 로키가 여기 있는 ‘진짜’ 이유를 밝히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는 다시금 강한 어조로 물었다.

“여기서 뭘 하는 겁니까?”

“……말했잖아. 여기서 일을 해.” 로키의 대답에 스티브는 신경질적으로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나랑 장난칠 생각은 하지 말아요.”

“내가 사실대로 말하면, 경찰에 넘길거야?” 로키가 물었다. 스티브는 로키의 차림새를 슬쩍 훑어보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로키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로등의 희미한 빛 때문인지 그 얼굴은 우는 것 같기도, 웃는 것 같기도 했다.

Posted by 우훗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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