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lling All In You

w. 야옹










사람의 평판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웠다. 누군가가 말한 것 처럼 10명의 사람이 있다면 7명은 내게 관심이 없고 2명은 나를 싫어하며 1명 정도는 나를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누군가에겐 호감이어도 누군가에겐 비호감이 될 수도 있는게 사람이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호감만 받는 사람이 있다면? 비호감만 받는 사람이 있다면? 뭐, 있을 수도 있겠지 라고 생각을 대부분 한다. 그렇다면 거기에 더해 누구에게나 호감을 받는 사람과 누구에게나 비호감을 받는 둘이 연인 사이라면? 이 이야기는 7년간 열애중인 스티브와 로키의 이야기이다.

스티브와 로키는 부모님들이 절친한 친우라 각자 성별이 다른 자식을 낳으면 결혼시키자는 의기투합까지 한 사이였다. 그들에게는 안타깝게도 둘 다 남아가 태어났지만. 여하튼 자연스레 둘은 무엇이든 함께 하며 자랄 수 밖에 없었다. 속된 말로 불알친구. 하지만 7살 때 까지. 왜 7살 때 까지냐, 단정을 짓는 이유는 그 후로는 그들은 인사 한 번 하지 않고 지냈기 때문이라고 말하겠다. 스티브와 로키는 어느 순간부터 데면데면 하더니 서로 모른 척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부모님들은 그 둘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각자 상대에 대해 물으면 선거 기간의 정치인 뺨치게 눈동자 한 번 흔들리지 않은 채 대답을 해 버리니 부모님들은 흐뭇하게 의심 한 번 않고 넘어갈 수 밖에 없었다. 모른척을 하고 산다 하더라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그들은 자연스럽게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고, 그 전까지는 그래도 쟤네 둘 친구래, 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었건만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로는 그 누구도 둘이 친구라는, 그것도 바로 울타리 하나 너머 옆 집에 사는 이웃사촌이라는 사실을 알 지 못했다. 이 맘 때쯤 이면 빌어먹을 사춘기-전적으로 로키의 표현이다-도 끝나 대략적인 성격이 형성 될 시기였다. 둘이 친구라는 사실을-비록 10년 넘게 모른 척 하고 있다 하더라도- 알지 못 하는 이유 중 하나도 이것에 있었다.

먼저 스티브부터 살펴보자. 스티브는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다. 180cm가 넘는 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꿀을 잔뜩 머금은 듯 한 블론드, 떡 벌어진 어깨, 쿼터백을 할 만큼 뛰어난 운동신경, 누구에게나 다정하고 상냥한 태도 등 이 모든 것이 조합되어 스티브를 사랑하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될 지경으로 만들었다. 모든 운동에서 두각을 보이는데 허세 한 번 부리지 않는 성격과 온 몸에 배인 다정함, 누구에게나 상냥한 태도, 불의를 보면 참지 못 하는 태도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사랑에 빠지게 했다. 누구나 스티브에게는 무엇 하나 더 못 주어 안달이었다. 스티브는 그럴 때 마다 곤란하다는 듯 웃었으나 그 모습이 더욱 큰 호감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을 그는 몰랐다. 미운 자식 떡 하나 더 준다니, 그건 목 막혀 죽으라는 소리가 아니면 말이 안 된다. 예쁜 자식에게는 떡이 다 무어냐, 십이첩반상을 차려 주고 싶은게 사람 마음이다. 그러다보니 스티브는 등교길에서부터 피리부는 사나이나 다름이 없었다. 스티브 좋은 아침, 스티브 오늘 뭐 해, 스티브, 스티브, 스티브! 모두가 그와 가까워지기를 원했고 한 마디라도 더 섞기를 원했다. 그와 가까워지고 그와 말을 섞는 게 마치 누군가에게 수여받는 훈장인 것 마냥. 선생님들 조차도 스티브에게 열심히 한다며-그저 주번 일을 했을 뿐인데도!- 꼭 무엇 하나씩을 챙겨주니 스티브를 향한 사람들의 무조건적인 호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렇다면 로키는? 로키는… 그랬다. 로키는 태생적으로 혼자임을 즐겼다. 아니, 여기에는 약간의 어폐가 있다. 로키는 태생적으로 혼자를 즐기지는 않았다. 적당히 남과 어울리는 것도 좋아하고 승부욕도 강했으며 누군가에게 호감을 받고 사랑을 받게 된다면 볼이 붉게 달아 오르는, 그런 아이’였’다. 하지만, 그의 곁에는 스티브가 있었다. 보기만 해도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다들 사랑을 조금이라도 더 주지 못 해 안달인 그런 아이. 로키는 자존심이 에베레스트 만큼 드높은 만큼 자존감이 마리아나 해구 뺨치게 낮았다. 스티브는 당연하게 받는 사랑들 하나 하나에 로키는 뺨을 붉히며 행복해 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어질수록 로키는 지쳐갔다. 내가 아무리 해도 스티브만큼 사랑해주지는 않는구나. 인생의 깨달음은 6살, 요구르트와 함께 왔다. 스티브가 여러 개를 받았다며 넘긴-수줍게 건넨- 요구르트였다. 로키는 빤히 내밀어진 요구르트를 바라보다 뒤돌아 낮잠을 자는 공간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날 낮잠시간, 로키는 통통한 뽀얀 두 볼에 뽑뽑 눈물자욱을 내며 생각했다. 이제 다 필요없어. 그 후 로키는 스티브에게서 점차 멀어지기 시작했고 스티브조차 8살이 되던 해 부터는 로키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그 후로도 로키는 깐깐하고-섬세하고- 유난스럽고-예민하고- 기분 나쁜 말만 하는-직설적인- 성격을 잔뜩 뽐냈다. 혼돈의 시기인 사춘기를 겪은 후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의 로키는 게임으로 따지자면 보스몹과 다름이 없었다. 시험기간에 너무 시끄러워 조용히 좀 하자고 했다고 욕 먹고, 선생님이 시킨 그대로 지킨다고 욕 먹고, 아파서 체육시간에 벤치에서 쉬었더니 책만 읽는 샌님이라 욕 먹고, 욕만 먹다 보니 로키는 자연스레 입을 더 다물게 되었다. 필요할 때만 한 마디 씩 하는데 그게 참다 참다 뱉은 말이다보니 날카로울 수 밖에 없었고 상대방의 입장에선 틀린 말은 아니니 기분은 나쁜데 할 말은 없어서 인상을 찌푸리며 멀어지려 했다. 거기다 몸을 부대끼며-땀을 흘려대는 건 질색이다- 하는 각종 운동에 전혀 관심도 없었고 항상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하다보니 굳이 몸에 배일 매너가 없어 괜한 눈초리를 사기도 했다. 시키는대로는 다 하니 선생님들의 사이에서는 그저 조용한 모범생 정도로 통했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괜히 재수없는 허옇고 비리비리한-스티브도 하얀데!- 샌님으로 통했다. 로키는 그런 말을 들을수록 입을 다물었고 로키에 대한 비호감은 로키가 입을 다물수록 그 크기를 키웠다.

같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상 둘은 필연적으로 마주칠 수 밖에 없다. 특히 로키 입장에서는 싫어도 계속해서 스티브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 왔다. 오늘 스티브가 어쩌구저쩌구, 로키는 신경질적으로 귀마개를 썼다. 소음이 대충 차단이 되자 그나마 나았다. 그 전 수업 때 나온 과제를 폈다. 어차피 집에 가서 하나 지금 하나 해야 하는 건 마찬가지니 시간이 빌 때 하려는 계획이었다. 이 계획이 실패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항상 최고의 효율성을 자랑했으니 계획을 실행하지 않을 이유는 없다. 마침 다음 수업이 자습을 준 덕분에 시간도 충분했다. 어렵고 재미도 없었지만 로키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로키의 목표는 하나. 졸업하자마자 영국으로 날아가 과거를 청산하고 새 삶을 살려는 목표. 영국에는 제 평판에 방해가 되는 스티브도, 그런 스티브에 대해 항상 묻고 잔소리하는 부모님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저를 싫어하는 아이들도 없었다. 새로운 출발선. 그것이 실상은 게으른 로키를 착실한 모범생으로 탈바꿈 시켰다. 남은 기간은 반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저 몇 개월만 더, 조금만 더 고생을 하면 제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남들은 프롬이 다가옴에 따라 점점 더 들떠 갔고 학교도 소란스러워졌지만 로키에겐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에세이를 쓰는 새하얀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여기는 이 단어 보다는 이 단어가 조금 더 어울릴 것 같고... 하나에 집중하면 주변을 돌아보지를 못 하는 로키라 귀마개를 해야만 겨우 반쯤 차단되었던 소음이 멎은 것을 눈치채지 못 했다. know와 aware of 사이에서 고민하던 로키가 aware of를 선택하였을 때, 새하얀, 하지만 로키와는 다르게 굵고 적당히 굳은살이 박한 손이 툭툭, 로키의 책상을 가볍게 두드렸다. 제 영역을 침범한 예의바른 불청객에 로키가 귀마개를 빼며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드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리고 갸우뚱. 제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얼굴에 뇌의 정보처리기능이 오류를 냈다. 스티브 로저스네. 근데 얘 왜 내 앞에 있지? 얘가 내 책상을 두드린건가? 근데 우리 모른 척 하고 지낸 지 10년이 넘지 않았나. 아니, 진짜 스티브 로저스라고? 까지 정보를 처리한 로키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 짧지만 긴 시간 동안 스티브는 햇살 같은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결국 입을 연 것은 떫은 감을 먹어도 그것보단 나을 표정의 로키였다.

"왜?"

길게 풀어 쓰자면 어떠한 이유로 십 년 넘게 모른 척 하고 살던 우리가 지금 얼굴을 맞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 좀 해라, 였으나 효율성을 최고로 치는 로키는 거두절미하고 한 단어만 뱉었다. 그것은 역시나 로키의 비호감을 조금 더 적립했다. 비호감이 항공사 마일리지였다면 퍼스트 클래스로 해외를 몇 번이나 돌아다닐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런 시덥잖은 생각을 할 만큼 스티브는 너무나도 뜬금없었다. 그래 덕분에 비호감 마일리지를 더 적립 한 마당에 이유나 들어보자. 로키는 펜마저 내려놓았다. 제 에세이의 효율성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know를 쓰는게 나을까? 공부 흐름은 중간에 끊기면 다시 이어지기 힘든데. 답답해 죽을 것만 같았다. 스티브의 입을 쭉 잡아 당겨 얼른 말을 하고 꺼져버리라고 소리 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멀뚱히 올려다보자 멀뚱히 웃으며-정확히는 눈이 휘어져라 웃고있는- 스티브가 입을 열었다.  스티브가 입을 여는 것이 마치 슬로우 모션처럼 보였다.  그래! 얼른 말 하고 꺼지라구! aware, know? 이 문맥상으로는 aware of가 더 알맞은 것 같긴 한데, 흠. know도 나쁘지는 않고... 솔직히 문맥상

"나랑 프롬파티에 같이 가줘."

너랑 프롬파티가 말이 안 되진 않,

뭐?


Posted by 우훗우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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